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료 25조원을 미리 받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 소식이 램·낸드 가격을 끌어올릴 근거는 약하다. 선납은 전기 요금 단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한전의 전력망 재원과 부채 문제를 푸는 방식이고, 지금의 메모리 가격 급등은 AI 수요가 만든 수급 불균형에서 나온다. 램값을 가늠하려면 이 뉴스가 아니라 AI 수요와 계약가격 흐름을 봐야 한다.

한전이 삼성전자에 약 20조원, SK하이닉스에 약 5조원, 합쳐서 25조원어치 전기요금을 5년치 미리 받겠다고 제안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규모가 크다 보니 부품값과 엮어 읽고 싶어지지만, 이 제안이 램이나 낸드 가격을 밀어 올린다고 볼 만한 연결고리는 뚜렷하지 않다. 이유를 나눠 보면 분명해진다.

Petr Ganaj
핵심은 돈의 용처다. 한전은 이 돈을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망을 까는 재원으로 쓰려 한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기를 먹는데, 그걸 실어 나를 송전망을 지으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한전의 총부채는 6월 말 기준 210조7000억원, 하루 이자만 115억원에 달한다. 사채를 더 찍는 대신 미래 전기요금을 당겨 받아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셈이 있다. 전력망이 제때 깔려야 새 공장을 예정대로 돌릴 수 있으니, 선납은 그 인프라를 앞당기는 담보가 된다. 방식은 1년에 걸쳐 선납금을 넣고 매달 낼 전기요금을 그 잔액에서 차감하는 구조이고, 한전은 선납금에 이자를 얹어 그만큼 요금을 깎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서 오해가 갈린다. 선납은 전기요금 단가를 올리는 일이 아니다. 낼 돈을 미리 낼 뿐이고, 오히려 이자만큼 할인이 붙으면 기업 부담은 소폭 줄어든다. 전기료가 반도체 팹 운영비의 일부인 건 맞지만, D램 판매가를 정하는 건 원가가 아니라 시장의 수급이다. 원가가 조금 낮아진다고 잘 팔리는 메모리 값을 회사가 알아서 내리지는 않는다.
굳이 연결을 찾는다면 방향은 반대다. 전력망이 빨리 깔려 신규 공장이 앞당겨 가동되면 몇 년 뒤 공급이 늘어난다. 그건 장기적으로 가격을 누르는 쪽이지 올리는 쪽이 아니다. 그마저도 지금 당장의 가격과는 시차가 크다.
2026년 메모리 가격은 이미 가파르게 올랐는데, 원인은 전기요금이 아니라 AI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면서, 세계 D램의 90% 가까이를 만드는 소수 기업의 물량을 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이 쓸어 갔다. 그 여파가 일반 PC용 램까지 번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D램과 낸드 계약가격이 올해 1분기에 직전 분기보다 각각 55~6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DDR5 일부 제품은 1분기에만 배 가까이 뛰었다. 상승세는 하반기로 갈수록 소비자 지갑 한계에 부딪혀 둔화될 것이란 관측이 있지만, 인텔과 실리콘모션 같은 곳은 이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전기료 선납 제안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부품값을 볼 때 이 뉴스는 가격 신호가 아니라 산업 재무 뉴스로 분류하는 게 맞다. 램을 사야 할지 미뤄야 할지 가늠할 때 볼 지표는 따로 있다.
이 세 가지가 위를 가리키면 값은 더 오르고, 꺾이면 진정된다. 한전이 전기요금을 미리 받든 나중에 받든, 그 지표들과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선납안의 세부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확정되더라도 매장에서 만나는 램 가격표와는 연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