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PC는 신품 조립PC와 달리 부품의 사용 이력이 가려져 있어, 겉보기 사양보다 실제 마모 상태가 가격 대비 가치를 좌우한다. SSD의 누적 사용 시간, 그래픽카드의 채굴 여부, 시리얼 기준으로 남은 보증 기간은 판매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변수다. 실물을 받기 전후로 CrystalDiskInfo 수치와 제조사 보증 조회, 안전거래 여부를 순서대로 확인하면 가격 대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조립PC를 새로 맞추면 사양은 내가 고르고, 부품마다 보증은 그날부터 다시 시작한다. 중고PC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고정돼 있다. 사양은 이미 정해져 바꾸기 번거롭고, 부품은 얼마나 굴려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넘어온다.
그래서 중고에서 진짜 봐야 할 것은 사양표가 아니라 사용 이력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하루 두 시간 문서용으로 쓴 것과 게임·채굴로 24시간 돌린 것은 남은 수명이 다르다. 문제는 이 차이가 판매글의 사양 목록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Photo by Nathan Anderson on Unsplash
중고라고 다 같은 위험을 지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RAM)와 CPU는 물리적으로 소모되는 부분이 적어 정상 작동만 확인되면 비교적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축에 든다. 케이스나 방열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수명이나 이력이 결과를 좌우하는 부품이 따로 있다. SSD는 쓰기 수명이 있고, 그래픽카드는 고부하 이력이 남고, 파워서플라이와 팬은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떨어지는 소모성 부품이다. 예산이 빠듯하다면 RAM·CPU는 중고로, SSD와 그래픽카드는 상태를 더 깐깐히 보거나 신품을 섞는 식으로 위험을 나누는 방법도 있다. 중고PC를 통째로 살 때도 이 세 부품의 상태에 눈이 먼저 가야 한다.
SSD는 중고 부품 중 상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품이다. 무료 프로그램 CrystalDiskInfo를 실행하면 건강 상태가 좋음·주의·나쁨으로, 남은 건강도가 퍼센트로 표시된다.
함께 볼 항목은 두 가지다. '사용 시간'은 전원이 켜져 있던 누적 시간이고, '총 호스트 쓰기량(TBW)'은 지금까지 기록한 데이터 총량이다. 이 두 수치가 판매자의 설명과 크게 어긋나면 사용 이력을 의심할 근거가 된다. 온도가 평소 30~50도 범위를 벗어나거나 재할당 섹터가 잡혀 있다면 교체를 염두에 둬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실물을 확인하기 전에 판매자에게 이 프로그램 캡처를 요청하는 것만으로 저장장치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걸러낼 수 있다.
그래픽카드는 SSD처럼 깔끔한 이력 수치가 없어 정황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장 경계할 대상은 채굴에 쓰인 카드다. 오랜 기간 고부하로 쉬지 않고 돌린 만큼 노쇠가 빠르고, 판매자가 이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관에서 단서를 찾는다. 팬과 방열판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거나, 기판에 부식·그을린 자국이 있거나, 슬롯에 꽂히는 골드핑거에 오래된 장착 흠집이 있으면 장시간 가동을 의심할 수 있다. 실물 확인이 가능하다면 GPU-Z나 MSI 애프터버너로 부팅 후 온도와 클럭이 정상 범위인지 짧게 돌려보는 것이 좋다.
확실한 증거를 잡기는 어렵다. 그래서 채굴 정황이 보이는데 시세보다 유난히 싸다면, 그 가격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중고에서 자주 놓치는 것이 남은 보증이다. 개인 간 거래에는 원 구매 영수증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유통사는 보통 제품 시리얼번호를 기준으로 보증 기간을 산정한다. 즉 영수증이 없어도 시리얼만 있으면 제조·유통사 홈페이지의 무상 A/S 조회에서 남은 기간을 확인할 수 있다.
구매 전 그래픽카드나 메인보드의 시리얼을 받아 조회해 보면, 몇 개월이라도 보증이 남았는지 아니면 이미 끝났는지가 갈린다. 이 차이가 실제 가격 협상의 근거가 된다.
확인을 순서대로 두면 헛걸음과 사기를 함께 줄일 수 있다.
이 순서를 지키면 중고의 가격 이점은 살리면서, 가려진 사용 이력에서 오는 손해는 상당 부분 미리 걷어낼 수 있다.